내 자매이자 친구, 한 여성 그리고 날 낳아주시고 길러주신 분에게 책을 선물하였다. 그녀의 삶이 절대 그녀 혼자만의 것이 아니었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다. 사실 우리 취향이 비슷하지 않아 책을 건네면서도 약간 걱정되었는데 그녀는 맘에드는 글귀를 쉼없이 본인 공책에 적으셨다. 책을 읽는 와중에 그녀는 '모든 여자들은 한번쯤 읽어야하는 책이다. 스테디셀러여야한다.'라는 찬사(?)를 보냈다.
그 책을 선물하며 기대한 바는 나의 오만이었다. 그녀는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풍부하고 다채로운 존재다. 그녀가 받아드리는 구절들의 깊이와 무게의 차원은 내게 와닿았던 그것들과 달랐다. 그래서 걱정도 되었다. 혹시나 이 책이 그녀의 상처를 들춰 힘들게 하지 않을까 하고.
내 선물 의도와 다르게 그 책은 읽히겠지만서도 작가와 그녀, 나 그리고 동시대 여성이 겪는 삶의 이야기는 결국 같고 다르기에 우리 모두 한번쯤은 피식 웃거나 밑줄긋게 되는 글귀가 있을거라 생각한다.
그러니 여자로 태어나서 미친년으로 진화한다는 말은 여자의 연대기에 관한 핵심적 진술이다. 문학평론가 신형철의 <느낌의 공동체>를 읽다가 밑줄 그었던 부분. "미친년 널뛴다는 말은 폭력적이다. 미친년을 미치게 만든 미친놈들의 존재가 생략되었기 때문이다." 새삼 궁금했다. 그길고 오랜 세월 동안 미친놈들의 존재는 어떻게 생략이 가능했을까.
생이 가하는 폭력과 혼란에 질서를 부여하는 시. 고통스러운 감정은 정확하게 묘사되는 순간 멈춘다고 했던가.
오직 노릇과 역할로 한 사람을 정의하고 성과와 목표로 한 생애를 평가하는 가부장제 언어로는 나를 온전히 설명할 수 없었다.
얼굴에 앳된 기색 사라지고 나면 한 여자의 개체성은 상실되고 엄마나 어머니로 호명되는 경우가 많다. 욕망의 주체가 아닌 돌봄 노동의 대명사로 불린다.
나는 기대보다 우려를 표명했다. 너희가 엄마를 아느냐는 오만함인지, 엄마를 부탁해가 될지 모른다는 불안함인지 뭔지 모를 복잡한 감정이 들었다. 시집, 철학서, 실용서, 번역서 등등 장르 불문 거의 모든 책 첫 장이나 머리말에는 나를 낳아주고 길러준 어머니에 감사와 회한의 글귀가 적혀 있다. 통계를 낸 건 아니지만 남자 필자의 책에서 더욱 자주본다, 부채 감정에 시달리는 아들들. 어머니에게 바친다는 클리셰. 한 줄로 요약되는 차가운 이성. 그걸 보면 마음이 안 좋다. 남자들이 대동소이한 방식으로 어머니를 불러댐에 따라 불효자 아들 - 희생과 헌신의 모성 관계가 영영 고착될 것만 같기에 그렇다.
한쪽의 수고로 한쪽이 안락을 누리지 않아야 좋은 관계다.
'밥'의 탈을 쓴 저 사사로운 질문이 얼마나 정치적인가를
늘 가상을 초과하는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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