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웃백에 다녀온 다음 날 아침은 역시 부시맨빵을 먹어야한다. 부시맨 빵은 참 렌지에 돌려먹어도 맛있고, 오븐에 구워먹어도 맛있다. (생으로 먹으면 안 맛있다) 이런 기성빵에도 만족하는 나는 과연 소비재 마케터의 자질을 가진 것인가 아닌가. 좋은 것을 써봐야 물건 볼 줄 안다. 맛있는 걸 먹어봐야 맛에 대한 기준이 생긴다. 근데 최근에 먹어본 제일 맛있는 건 가지된장 덮밥이었다. 난 소박하고 주관적이고 고집센 입맛을 가진 걸까. 그렇지 않다면 많이 맛보지 못한 자의 변명이다.
모 예능 PD는 한 사람과의 연애를 시작하면 그 사람의 취향과 지식, 그리고 많은 것이 함께 온다 하였다. 그 사람의 세계로 안내 받는 것이다. 직장도 그렇다. 처음 주방용품팀에서 인턴을 시작하면서 전혀 모르던 세상에 입문하였다. 그렇게나 많은 냄비와 후라이팬, 접시와 커틀러리 들. 알고보면 보이는 것이 많다.
그렇게 지금 회사에 왔다. 옆 팀에서 만년필을 파는 바람에 나는 만년필의 세계에 입문당했다. 졸업 선물로 부장님께 받은 라미 룩스를 시작으로 조금 씩 펜과 잉크를 사들이고 있다. 아침엔 택배가 왔다. 세필이 하나 필요해서 파이롯트에서 하나 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몰스킨에선 중필이다. 심지어 뒤에 다 비침) 1.5닙을 하나 살 생각이고, 78g b닙은 이베이 홍콩에서 조금씩 천천히 오고 있다.
내가 맡고 있는 소비재는 주방+생활 쪽이다. 저 둘 사이 카테고리 어딘가에 속하는 브랜드가 하나있다. 큰 애정이 가는데 곧 런칭하는 브랜드기도 하고 무엇보다 예쁘기 때문이다. 커피와 차를 모르지만 더 알고 싶고 궁금하기 때문이다. 알아가는 과정이 즐겁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가오는 mkt visit이 힘들겠지만 즐겁고 의미있는 시간이 되지 않을까 싶다. 대비해서 핸드폰 용량을 넉넉하게 해두고 나가야겠다.
나의 보스 또한 새로운 세계로의 문을 열어주는 이다. 그녀는 종종 나의 블로그에 등장했는데 지난주 수요일 신입 멤버 환영회는 그녀의 집에서 열렸다. 입사 9개월차, 그녀의 집 방문이 세번째다. 회식 장소로서의 일반 음식점이라 하더라도 9개월에 세 번이면 결코 적은 횟수는 아니다. 올해가 가기 전에 메종에 한 번 더 가지 않을까 싶은데 이제 분기별로 지코와 해리를 보지 않으면 섭섭할 지경이다. 대궐 같은 그녀의 집엔 영감을 주는 것들이 있다. 예를 들면 거실 통유리 넘어 있는 저수지라던가, 쌓여있는 모노클, 아빠르따멘또라던가, 자유롭게 뛰어다니는 비숑과 꼬똥 드 툴레아(aka 지코와 해리)라든가 와인 냉장고라든가, 어떤 장을 열면 줄줄이 나오는 에르메스 와인잔이라든가.
주말 내내 했던 것은 인터넷 쇼핑으로, 또 나의 소비가 한뭉탱이 발생하였다.
이상 9월 18일에 마무리하여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