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닭에 삼겹살까지 구워먹고 나니 이제는 배가 불러서 모든 게 귀찮다. 어제 무식하게 산 무화과 한 박스를 예상과 달리 너무 빠르게 먹어 치우는 바람에 나는 스스로에게 놀랐다. 맛은 그냥 그랬다. 선풍기를 틀어 놓았다. 선풍기 바람은 싫어하지만 이것 나름 여름의 소리와 촉감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원래는 근 2주간 쓸 말이 많았다. 기억하기론 김성현 교수님에 대한 존경과 애정을 밤 사이 짧게 적고 간 것이 마지막 포스팅이었다. 포스팅이 없던 2주간 내게는 꽤 많은 일이 있었는데 그건 학교 일과 사람들을 만난 일 그리고 계속하고 있는 영어스터디와 졸업할 나이가 다 되어서야 다니는 학교 맛집 등 이었다. 그걸 구구절절 남기고 싶었는데 귀찮음에 나는 미루고 미뤘다. 중간중간 핸드폰에 끄적여 놓은 임시저장 게시물을 보았다
1. 오늘 8월 5일은 자매님 생일입니다 짝짝짝
2. 애플뮤직으로 갈아타야겠다
3. 내일은 울산으로 갑니다
4. 미국가자
5. 학교야 아프지마.
-본관에 네 번 정도 갔다. 개인적인 경험으로
라고 되어있다. 남기지 않았더라면 놓칠 거리가 많았다.
1. 자매님 생일은 잘 축하드렸습니다. 케이크는 내가 더 많이 먹은 것 같지만.. 왜 투썸은 할인이 안되나요..
2.애ㅍㄹ뮤직 잘 쓰고 있습니다. 불광천 걷다가 한강에 다다를 쯤 세븐 '열정'이 나와서 나는 신이 났고 초딩 때 생각이 났다.
3.울산. 낙타 called it 크라잉 마운틴. 아마 다신 울산에 갈 일은 없을 거야. 이제 현중도 울산도 ㅇㅈ도 모두 ㅃ2. 우리는 어처구니가 없었고 그녀 대신 울분을 토했으나 그 누구도 그녀만큼 힘들진 않다.
4.얼마 전 꿈에 유럽(으로 생각되는) 어느 마을이 나왔다. 나는 교환학생에 갈 때에도 독일을 제하고는 유럽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딱히 하지 않았다. (미국이 정말 가고싶었다) 그런데 그 꿈을 꾸고 나니 갑자기 유럽에서 살고 싶었다. 그 동네는 정말 따뜻하고 추운 곳이었다. 나는 바리케이드를 쳤다. 차사고가 나면 안되니까.
5.학교 완치를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이상 8월 6일 임시저장 글에 대한 8월 14일 피드백을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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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래서 저것 말고도 무슨 일이 있었는가 하면 (앨범을 열어본다) 울산에 다녀온 날 그 날 개-피곤한 심신을 안고, 아니 질질끌고 지역 주민들을 만났다. 타이 익스프레스가 상암에도 생겼다. 지하에 작게 생긴거지만. 팟타이는 짜고 커리에선 허니버터칩 맛이 났지만 맛있게 먹었다. 그리고 맥주를 마시러 갔다. 쥐포튀김이, 정말 의외의 포인트에서 맛있었다. 그래서 기분이 좋았다. 세상 맛있다는 음식, 음식점 등에 대한 관심이 덜 해지는 건, 물론 호기심은 여전하지만, 미각이 주는 쾌락의 최대치는 어느정도 정해져 있고, 내게 '맛있음' 편차는 크지 않기 때문이다. 더욱이 음식을 먹는 건 같이 먹는 사람, 컨디션, 음식점의 분위기 등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거지 맛 자체의 변수는 내겐 크게 작용하는 게 아니라서. 바근솔의 떡볶이 이야기가 그래서 나는 매우 마음에 들었다. 그렇다. 역시 떡볶이는..
그곳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갑자기 노래방에 가고 싶었다. 그래서 갔다. 난 노래방에 적합한 목소리나 음역대를 갖지 아니해서 옆에서 목청 좋은 아이들이 소리지르는 것을 잘 들었다. 어쩜 저렇게 목청이 좋을까. 우리 은솔이는 나이도 한 살 어리고 어렸을 땐 일본에 살고 그리고 지금은 로스쿨 공부에 바빠 우리가 아는 노래를 그 아이는 모르는 경우가 많았지만 그래도 난 맘마미아 같이 따라 불러서 기분이 좋았다. 그다운 선곡이었다. 노래방 주인분은 본인이 노시느라 우리 방에 추가시간 주시는 걸 잊어 버리셨고 우리는 80분을 끝으로 그 곳을 나왔다. 그리고 휘서 오빠와 조인을 하였다. 오빠는 친구와 같이 있었는데 이 5인 조합은 2년 전 이맘때 조합과 같았다. 나는 그동안 더 싸가지가 없어져서 반말을 서슴지 않고 했으나 어차피 자주 보는 조합이 아니니까 괜찮으려니 생각했다. 농사 지을 때에도 오빠들에게 ,유독 남자 연상에게 반말을 잘했는데 어떤 사람은 내게 그건 너가 평등하고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자랐기 때문이라고 하였다.-사실 꼭 그렇진 않은데 만약 이게 내 성장 배경에서 비롯된 거라면 그렇다면 그건 엄마와 아빠의 관계를 학습했기 때문일거다- 그래 사실 호칭도 없었으면 좋겠다. 서로가 00! 이렇게 부르면 더 좋은 세상이 될 거 같다. 그렇지만 현실에선 위아래 없는 싸가지 없는 사람이 되니까 참아야지.
난 그 술자리에서 마음 기쁜 소식을 하나 듣게 된다. 연락이 끊겼던 중학교 선생님의 이야기였다. 내가 좋아했던 담임 선생님은 두 분 계시는데 한 분은 겨울방학이 끝나고 우리에게 말도 없이 대학원으로 가버린 중1 담임쌤이고 (그 분은 우리가 두 번째 학교의 첫번째 담임반이었는데, 어린 선생님 특유의 열정으로 많은 걸 해주셨다. 하지만 성격은 아주 조금 더러웠다.) 다른 한 분은 중3 담임쌤이었다. 그 분은 목소리가 까랑까랑하였다. 밝은 기운을 주시는 분이었고 난 그 분이 내 담임쌤이라서 좋았다. 난 학기말에 그 분께 큰 실수를 했는데, 지금 교직에 있는 친구에게 내 이야기를 들려주니 본인이라면 뒷목을 잡고 쓰러졌을 거라며 --년 소리 나올 정도의 일이라고 하였다. 그래서 나는 그냥 짜져있기로 하였다. 그렇지만 난 단 한번도 그 쌤을 싫어한 적이 없었다. 억울한 실수였다.
아무튼 내가 반말 찍찍했던 오빠는 올해 스승의 날에도 선생님을 뵈러 갈 정도로 친한 사이였고, 난 이제 어색함을 덜고 선생님을 만나 뵈러 갈 수 있게 되었다(그 사람이 나와 동행해준다면). 정말 기쁜 일이다! 선생님 프사를 보았다. 선생님은 여전히 밝고 소녀 같으셨다. 초딩이던 선생님 아들은 군대에 갔다. 하긴. 내년이면 졸업한지 10년이다.
그래서 집에 도착하니 3시가 넘었다. 월요일엔 영어스터디를 하러 갔겠지. 4명이던 스터디원은 둘로 줄었다. 말할 기회가 많을 거 같았지만 막상 할 말이 도무지 떠오르지않았다. 영어 절레절레. 지수가 퇴근 후에 학교에 왔다. 지수와 신촌에서 맥주 한 잔하고 비글처럼 신촌을 뛰어다녔다. 난 지수랑 같이 있으면 정말 비글처럼 되는데 술을 마시지 않아도 술을 마신 것 같은 기분이 들고 좋다. 그녀에게 꼭 소개팅을 시켜주리라 (유지현 숙원사업)
화요일엔 아마 집에서 쉬었겠지. 왜냐면 지난 3-4일 너무 달렸으니까. 수요일 점심엔 슬구와 박은솔을 만났다. (이 주말에도 고등학교 아이들을 만났는데 실로 국제고위크였다.) 아웃백은 좋았다. 역에서 가깝고 사람 없고 친절하고 시원하고 적당한 채광과 자리 편한 것이 명동 아웃백 최고!!! 슬구는 안 본 사이 외국인/교포가 되어 나타났다. 슬구는 여전하였다. 예전 하얗고 멍멍이스러움은 많이 사라졌지만 그래도 한번 멍멍이는 영원한 멍멍이... 포르투견 브라질 월드컵 통역하던 자랑스러운 멍멍이..
그리고 박은솔과 함께 학교에 갔다. 디톡시에서 샐러리-자몽을 마셨는데 박은솔은 한 입 마시더니 토할 거 같다고 하였다. 나는 무뎌서 그냥 다 마셨다. 방학동안 이씨씨 스벅은 학생증 사이즈업이 된다. 그녀는 좋은 정보 고맙다고 하였다. 서로 도서관에 있다가 7시쯤 다시 만났다. 학교 앞을 돌아다녔다. 딱히 배가 고프지 않았는데 입이 심심했다. 소오에서 밥을 먹었다. 다음엔 폭찹을 먹어야지. 8시 시위에 맞춰 학교에 갔다. 난 혼자 온 지수를 만나러 바근솔과 전지원을 두고 떠났다. 아 교문 앞에서 경민 선임님을 만났다. 난 반갑게 그녀에게 인사를 하며 손을 잡고 엄청 흔들었으나 그녀는 바빠보였다. 그래서 그녀를 놓아주었다. 학교를 한 바퀴 돌았다. 마스크를 쓰고 구호를 외치려니 너무 덥고 머리가 아팠다. 체할 거 같았다. 겨우 이씨씨에 앉았으나 난 건물 계단 위로 꽉 찬 인파 때문에 건물이 무너질까 너무 무서웠다. 다행히 무너지진 않았다.
비글처럼 지수와 신촌을 가로질렀다. 지수가 망고그린티를 사줬다. 아 우리의 공차와 코이여. 그렇게 수요일이 끝났다. 목요일엔 이태원에 갔다. 뜨거웠다. 오랜만에 할멈을 보았다. 그녀는 초등학교 선생님이다. 그녀는 나를 아이 혼내듯 혼냈다. 쉿-! (손모양까지 같이) 하경초이는 산티아고에 간다. 국제기구 인턴이라 하였다. 즐거운 인생이다. 그녀 나름 부담이 있겠지만은. 칠레라니 나도 칠레가고싶다. 그리고 우리는 그 캐나다 바인지 식당인지에서 15만원인가를 먹었다. 쉬지 않고 시켰다. 괜찮아 이태원이잖아! 이태원에서 알바하고 싶어졌다. 이태원 즐거운 동네--
아 그리고 금요일이 되었다. 참고로 토요일은 토익을 보는 날인데 난 토요일 아침까지 아니 토요일 점심까지 토익 신청한 나를 매우 떄려주고 싶었다. 왜 신청했을까.
그래서 남은 이야기는 다음 포스팅에 이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