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조용하게 살고 있다.
평온하게 살고 있다. 그 날 하루 술을 마신 걸 뺴고는 조용하게 살았으며, 그 날도 비교적 조용히 마셨다. 놀랍게도 숙취가 없던 날이었다. 사람들은 기억력이 좋았다. 내게 그들은 두 달(더하기 알파)의 기억이 전부였던 사람들이지만 그렇지만 다시 만나도 즐거웠다. 그 짧은 시간 중에 깨알같은 추억들이 있었다. 본점 인턴들은 괜찮은 사람들이다. 이렇게 말하다가 흠칫하게 된다. 개중 괜찮지 않았던 사람이 설마 나였을까봐 하는 걱정에서. 아무튼 다든 귀여운 사람들이다!
8월은 시원하였다. 이번 여름이 유독 짧았다. 작년 여름은 내게 길었다. 힘들게 없었는데 힘들었던 날들이었다. 올 여름은 생각보다 빨리 갔고 나쁘지 않았다. 걱정될만한 일은 크게 없었다. 중간중간 나를 힘들게 했던 일들이 있었지만 사는 데에 그 정도의 오르고 내리는 이벤트는 이제 자연스럽다. 난 8월 초부터 가을을 느끼고 있다. 가을이 좋다. 일년 내내 가을이어도 좋을거다. 가을의 나라로 가고 싶다. 나중에 아이를 낳으면 가을이라고 이름을 짓겠다 하였다. 승태는 가을이 갈수록 희미해지는 한반도 기후에서 가을이냐고 했지만 희미해 질 수록 그 가치는 커진다.
여전히 책을 읽으려 노력하고 집은 벌써 많이 지저분해졌다. 그와중에 난 또 새로운 사람과 친해지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데 그와 친해질 빌미를 못 찾고 있다. 그는 가끔 바보 같은데 곰 같기도 한데 무엇보다 내가 아직 그를 잘 모른다. 13기 사람들과도 몇 번 보았다. 그냥 너무 당연했던 것들이라 딱히 적을 필요를 못 느꼈는데, 생각해보면 너무 당연했던 것들을 적는 게 좋겠다. 당연했던 것들에서 멀어지면 그 당연했던 것들이 안 당연해진다. (당연한 말을 한다?) 그 당연함이 소중했든 아니든 당연함에 대한 기록은 과거의 나와의 거리를 느낄 수 있는 좋은 장치가 된다. 나는 이만큼 변했고, 그 때는 이랬고, 지금은 이렇고, 그게 모여서 내가 되고 있고. 재미있거든 과거의 다른 나를 보는 일은.
지금의 나를 남기는데 내가 느끼고 생각한 바를 오롯이 글로 풀어내기 어렵다. 메일을 쓰다가도 문장이 턱턱 막힌다. 영어를 더 배워야겠다고 생각하였다. 8초엔 헥터가 한국에 왔는데, 그와 이야기하면서 느꼈다. 아 이 영어론 탈조선은 어렵겠다. 그는 싱가폴에 사는 중국인이었는데 북부 출신이고, 난 전혀 인지하지 못했지만 허차장님에 따르면 있어 보이는 중국인이랜다. 그녀의 판단 기준은 특히 그것이 세속적인 것일 때 더 신뢰가 가는데, 그래서 그녀의 말을 듣고 나니 그런 것 같기도 하였다. 어울리지 않게 애플과 bno에서 일했단다. 대기업에서만 일해서 그런지 뭔가 러프한 느낌이 있다. 하지만 그 비즈니스 덕분에 내가 배울 것이 많을 것이다. 그러길 바란다. 자나깨나 보덤 생각만 하게.
오늘 아침엔 눈을 떠서 버터링을 먹었다. 어제 자정 다 되어 간 마트에서 집어왔다. 버터링은 참 맛있는 과자인데 모든게 (가을을 제외하고) 그렇듯 한계효용이란 건 체감하기 마련이다. 젤리도 먹고 카라멜콘도 먹고 요거트도 먹고 지인이가 해놓은 수육도 먹고 파프리카도 먹었고 그리고 낮잠을 자고 일어나서 라면을 먹었다. 완벽한 일요일의 식단이다.
준보 뒤에 장천 있다.